고리1호기에 이어 두 번째다.
원전이 더 필요하다는 산업계는 4차 산업혁명의 심장이라 해야 할 재생가능에너지를 외면한 채 2세기 전의 에너지원 석탄과 한 세기 전의 에너지원 원자력을 기반으로 미래 경제를 구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불안정한 토대 위에 구축된 경제는 쉽게 허물어지고 말 것입니다.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낡은 꿈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을 생각하는 환경주의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위한 환경주의 말이다. '까짓 전기요금 좀 오르면 어떠냐'고 으스대거나 '에어컨 안 틀어도 한산모시를 입으면 시원하다'고 말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 가진 자의 여유일 뿐이다. 그 몇 푼의 전기요금도 내지 못해 여름에는 헐떡이고 겨울에는 덜덜 떠는 그런 이들을 생각하는 환경주의와 에너지 정책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건 보수라고 생각하건, 더 많은 이들이 사람을 생각하는 환경주의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지금 짓고 있는 핵발전소는 설비용량 140만kW급에다가 설계수명이 무려 60년이다. 만약에 문재인 대통령 임기에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신규 핵발전소 5기를 그대로 추진하면 핵발전소 기수는 25기에서 28기로, 용량은 고리 1호기 10기에 해당하는 570만kW가 늘어난다. 탈핵 선언이 무색해진다. 대통령이 핵산업계를 의식한 듯 연설문에 언급한 "핵발전소를 긴 세월에 걸쳐 서서히 줄여가는 것"이 무려 40년에서 60년이 걸린다면 이것을 '탈핵'이라 할 수 있을까?
고리 1호기가 상업운전을 시작한 1978년 이후 지난 40년간 외부에 공개된 사고와 고장만 무려 130여 건에 달합니다. 2012년 2월 9일에는 외부 전원이 끊긴 상태에서 비상 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원전 전체에 전력공급이 12분이나 중단되는 매우 위험한 사고가 있었죠. 하지만 해당 사건은 운영자인 한수원이 사고 발생 당시 취해야 할 백색비상 발령, 관계기관의 보고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한 달 넘게 조직적으로 은폐하다가 뒤늦게야 밝혀졌었습니다. 만약 위험 상황이 지속되었다면 우리나라도 후쿠시마와 같은 초대형 원전사고를 겪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황금알을 낳는 원전산업, 과연 그 천문학적 이익은 어디로 돌아갈까요? 원전 산업은 실질적으로는 독과점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요기기를 거의 독점으로 납품하는 두산중공업과, 과점형태인 주설비공사를 따내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SK건설과 같은 주요 건설사들이 막대한 이익을 벌어들입니다. 소수 대기업으로서는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너무 쉬운 시장인 것입니다. 그리고 뇌물, 재취업, 연구비를 통해서 원전 공기업, 원전 당국, 원자력 학계 등이 그 이익을 공유하면서 그들만의 견고한 카르텔이 유지되고 확대되는 것이지요.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원전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미국보다도 20배 이상 높고, 러시아보다는 100배 이상 높습니다. 그리고 개별 부지별 원전 밀집도 및 부지별 원전 규모에서 역시, 우리는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고리 원전은 총 설비용량 6,860메가와트(MW)로 현재 가동되는 원전 단지 중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 단지입니다. 고리 원전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타이틀은 "대형 원전 단지 주변 30km 내 인구, 세계 최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25기의 원전 중, 규모 7.0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원전은 현재 시운전 중인 신고리 3호기뿐입니다. 나머지 24기 원전은 규모 6.5에 맞춰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요. 만약, 영화에서처럼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부실시공', '부실검증', '원전 비리' 등은 없다고 가정할 때(즉, 모든 원전이 내진설계 기준대로 제대로 지어졌다고 한다면) 일견 안전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고리1호기폐쇄 부산범시민운동은 정부와 한수원의 고리1호기 수명재연장 추진방침에 맞서, 위험한 '고물원전' 고리1호기에 생명과 안전의 위협을 받으며 가위눌린 삶을 살게 된다는 부산시민의 절박한 상황과 이러한 노후 핵발전소의 가동 재연장은 실은 '핵마피아의, 핵마피아에 의한, 핵마피아를 위한 정책'일뿐이며, 이러한 잘못된 정책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시민들의 단결된 힘밖에는 없다는 자각에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명운을 건 위험한 도박이 진행 중인 고리 원전에 정부는 다시 또 2개의 원전(신고리 5,6호기)을 추가 건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부산 시민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린피스가 한국갤럽을 통해 부산시 거주 19세 이상 성인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84%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부산 시민들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 정책이 이렇게 시민들이 모르는 채로 진행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입니다.
고리 원전의 반경 30km에는 부산, 울산, 양산시가 포함되고, 이곳에는 약 34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원전 인근 30km 내 인구수만 고려한다면 고리 원전은 세계 4위에 해당되지만, 1위부터 3위의 경우 1개 혹은 2개의 원자로만 위치해 있고 원전 규모 역시 고리에 비하면 약 1/4에서 1/80밖에 되지 않습니다. 원자로가 6개 이상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는 원전 부근에 이렇게 엄청난 인구가 살고 있는 곳은 전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산과 울산에 위치한 고리 원전은 이미 건설이 완료된 신고리 3호기가 운영을 시작하는 순간, 세계 최대 규모의 원전 단지가 됩니다. 이어 내년에는 신고리 4호기가 추가로 운영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큰 원전 단지인 고리에 추가로 2개의 원전, 신고리 5, 6호기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이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위험"입니다.
2015년 10월 13일 새벽, 5명의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레인보우 워리어호(Rainbow Warrior)에서 발진한 소형 고무보트에 몸을 싣고 고리원자력발전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운영을 시작하지 않은 신고리 3,4호기 원전 앞 해상방벽 위로 안전하게 상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곳에서 활동가들은 "인자 원전 고마 지라, 쫌!"이라는 글이 쓰인 현수막을 펼치며 평화적 시위를 진행했습니다. 위험한 신규 원전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 안전 상륙 작전"에 동참한 그린피스의 활동가들.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요? 뭔가 특별한 사람들일까요? 어떤 이유로 기꺼이 용기를 냈던 것일까요?